한 쪽 성경공부 29_ OBS29, 성경공부 리더들을 위한 해설) 입력: 2013.10.26 21:34
=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법
THEME_a :[내 생각 말해보기]
죄의식과 양심의 법/ 죄와 사망의 법, 생명의 성령의 법/ 성령의 음성을 듣는 나만 의 방법/
1. 죄의식과 양심의 법
자신의 죄의식의 경험을 이야기 하기는 어려울 것같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용기가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있어서 꼭 깊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 나눌 수 있는 정도의 것이면 충분합니다. 죄의식은 사춘기, 또는 청년의 때에 자주 느낄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꼭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자연인들 역시 죄의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경우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음 안에는 하나의 법이 있는데, 그것이 양심의 법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곧 율법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자신 마음 안에 양심이 스스로의 율법이 되어 마음의 율법을 나타내고 그것으로 송사하며 변명하며 마음의 율법을 드러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2:14-15)
그러므로 불신자들도 자신의 율법을 범한 많은 죄들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받고 괴로와 할 것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죄의식은 인간을 따라 다닐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죄와 사망의 법, 생명의 성령의 법
사람들의 성품,가치관,인생관,종교관 등등에 의해서 사람들 개인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윤리적 가치 같은 결정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사람들이 무엇인가 앞에서 결정해야 할 때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하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도 두 가지 이상의 윤리적 결정 가운데서 부득불 하나를 선택할 때 갈등이 일어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옳고 그른 일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데 이에 따른 마음 안의 작용이 분명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로 사람들은 선과 악 사이에 끼여있는 존재같다고 생각될때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의 마음 안에서는 두가지의 법이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롬8:1-2)
아마도,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가능하면 잘 지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지만 그리스도인들 역시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하게 하시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3:31)
그런데 율법은 우리가 완전히 지키고 이루기에는우리가 너무 연약해서 그것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자신의 양심의 법으로 옳다고 판단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해 마음 안에서 외치는 정의로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될 때 자괴감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죄인임을 자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이되어 온전히 우리를 사로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가 심히 죄가 되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롬7:13) 율법은 이런 면에서 죄와 사망의 법으로 작용합니다.
롬7:14-25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의 이러한 고백은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놓인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 성령님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일으켜세우십니다. 우리가 율법을 완전히 이겨나갈 수 없기 때문에,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원치 아니하나 이길 수 없는 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유케 도와주시고, 다시 율법이 요구하는 바 사랑의 삶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성도들과 교통하시는데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 안에서 성도들을 감동을 시켜주시고, 깨닫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 것은, 말씀대로 살지 못해 느끼는 절망감 속에서도 차마 죄를 짓지 못하도록 도우실 때가 있는데 이것은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설령 죄를 이기지 못하고 율법대로 시행하지 못하였을 때에도 성령께서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다시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도우시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활동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죄의 소욕과 성령의 거룩한 소망 사이에서 자신을 "사망의 몸"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할진대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지나친 죄책감으로 자학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루 하루 거룩한 삶으로 이끌려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 3, 16/29장에서 "도둑질 한 사람은 그 손을 잘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미 고민해보았습니다. 율법을 범해 손을 자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죄를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도우심과 거룩하심으로 변화되어 가면서 죄를 하나 둘 씩 버리고 가벼워지는 삶으로 인도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지나친 죄책감과 자학에 빠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적극적인 삶으로 나아가지 않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에 있어서 초보적인 자리에서 일어나 완전한 믿음의 단계로 나가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뒤엣 것을 잊어버리고 부름의 상급을 향하려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히6:1-2)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3. 성령의 음성을 듣는 나만의 법
령의 음성을 듣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분명 성도들과 소통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많은 분들이 성령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자신만이 하나님과 직통 계시를 받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다는 것은 곧 성령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사도와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한다는 것은 곧 성령님과 교통하고 성령님의 가르침과 인도함을 받아 성도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해서 경건한 삶과 하나님의 말씀을 잙 읽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하여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지지만, 성령께서는 성도들 가운데 임하시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의 일과 관련하여 거룩한 소망을 불어 넣으시기 때문에 자신 안에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신 거룩한 소망이 스스로에 의하여 발견되어 진다면 성령님을 받았음을 확신해도 좋을 것입니다.(빌3:1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우시는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아가는 성도들은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성도님들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신비스런 방법으로 들으려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시는 신비스런 방법으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기도 하시지만 성도들의 삶에 대하여 모든 부분을 신비스런 방법으로 소통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지나치게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기를 권합니다.
성도들은 성경을 부단히 읽고 말씀 위에 든든히 서서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을 받으시면 좋을 것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말씀하셨듯이,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